집으로 데려가시지요
link  호호아줌마   2025-01-06

집으로 데려가시지요



생사를 넘나들며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볼 때면 의료진은 이 환자가 살아 있는 것이 정말 그를 위해 더 나은 일인지를 자문할 때가 적지 않다.

19세 정유경씨는 혈구감소증으로 혈액종양내과에서 치료를 받던 검사 도중 자가면역 질환 의심 소견이 보여 나에게 의뢰되었다. 원인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해볼 수 있는 치료, 써볼 수 있는 약은 이미 다 거쳤고 환자는 약 부작용으로 더 힘들어하고 있는 암담한 상황이었다. 어떤 치료 방법이 더 남아 있들지 검토하고 있던 중 갑자기 유경씨가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뇌혈관이 여러군데 막히는 심한 뇌경색이 확인되었는데 그야말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심폐정지에 대비해 환자를 급히 중환자실로 옮겼다. 이때야 처음으로 나타난 다른 가족들이 왜 미리 뇌 사진을 찍어서 이런 일을 대비하지 않았느냐며 나를 비난했다. 할 말은 많았지만 차분하게 예측 불가의 상황이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그들의 원망을 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뇌경색이 발생한 지 일주일 후 유경 씨의 상태는 정말 참담했다. 의식은 있고 말도 알아듣는데 정작 말을 하지 못했다. 연수기능이 마비되면 언어중추도 같이 소실된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남편과 환자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뇌에 대해 아직도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유경씨는 팔다리는커녕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했지만 심장은 세차게 잘 뛰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중환자실에 계속 있을 수가 없었다. 유경씨가 일반병동으로 옮겨진 날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들이 다 나갔다. 밤낮으로 꽥꽥 울어대는 통에 없던 병도 생길 것 같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유경씨의 가족도 병동에 나타나지 않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사정이었다. 환자는 병실에 간병인도 없이 홀로 내팽개쳐졌다. 병원도 의료진도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가족도 간병인도 없는 상황에서 병동 간호사들이 대소변을 다 치웠다. 나는 나대로 매주 장기 입원사유서를 써서 내야 했다.

사실 유경씨는 더이상 상급 종합병원에 입원할 이유가 없었다. 환자의 뒤치다꺼리와 수혈 정도만 해줄 수 있는 병원이면 어디에 입원해도 상관없는 상황이지만, 내가 그 사실을 기록하는 날에는 환자의 치료비가 모두 비급여로 전환되고 만다.

의료진보다 환자가족은 더 큰 수렁에 빠져 있었다. 이미 4개월이 넘는 병원생활로 지금까지 이 병원비만으로도 가족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더 최악인 것은 이런 생활이 언제 끝나게 될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비보다 더 부담이 되는 것은 간병비다. 병원에서 나빠졌으니 병원 책임이라고 주장하면서 될 수 있는 한 오래 병원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가족들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손가락도 못움직이는 환자를 병원에서 쫓아내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다시 한달이 지났다. 아침에 아무도 없는 병실에 들어가서 “유경아 잘 잤니?” 하고 물으면 환자는 목청껏 울부짖는 것으로 답을 했다.소리도 다 들리고 생각도 하는데 누워서 꼼짝하지 못하는 저 삶은 어떤 지옥일까? 결국 환자를 2차 병원으로 옮긴 날, 유경이 어머니는 다시 나를 찾아와서 그 병원에 못 있겠으니 다시 여기로 오게 해달라고 요쳥했다.

“왜요? 치료가 어려운 점이 있나요?”
“아니요 간병비를 포함한 병원비를 한달에 150만원이나 내라는데 저는 그 돈을 낼 수가 없어요. 여기로 다시 옮기게 해 주세요.”

나는 다시 천장을 보다가 크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유경 어머니, 이 병원에서 지난 6개월간 유경이의 치료비가 2차 병원보다 적었던 이유는 이 병원 의료진들이 환자 가족이 떠맡아야 하는 짐을 전부 대신 져주었기 때문이에요. 환자의 대소변을 치워주는 일은 병동 간호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예요.“

”.........“

”우리가 유경이에게 어떤 도의적인 윤리적 책임이 있어서 그동안 그 일을 해온 것은 아니예요. 다만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하다가 일어나 그 모든 불행이 안타까워서 선의로 그렇게 했던 겁니다. 그 부분을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만일 유경이가 다시 이 병원으로 옮긴다면, 그동안 저희가 선의로 했던 모든 일을 이제는 더이상 할 수 없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그 모든 선의를 거둔다면, 유경이의 병원비는 지금 있는 2차 병원보다 훨씬 비싸질 거예요.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어서 유경이처럼 불행한 결과를 맞게 된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가족이 져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예요.“

나의 잔인한 말에 유경이 어머니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이 나온 김에 무엇이 지금 유경이에게 최선일지에 대해 제 솔직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뭔데요?“

”이제는 가족들의 삶을 생각하셔야 해요. 유경이의 병원비를 그렇게 짊어지다보면 어머니도 곧 엄청난 곤경에 빠지게 될 거예요.“
”이미 어렵습니다.“
”유경이를 집으로 데려가시지요.”
“뭐라고요? 그럼 죽는거 아니예요?”
“그동안 제일 문제가 되었던 것이 혈소판 수치인데 우리 병원에서 마지막 두어달 동안 관찰해보니 수혈을 안 해도 수치가 더 떨어지지는 않더군요. 어차피 지금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니까 출혈은 그리 크게 걱정을 안해도 될 거예요.”
“그럼 밥은 누가 챙겨줘요...."
"지금 콧줄로 영양 공급을 하고 있지요? 그것도 집에서 할 수 있어요. 장애인 활동지원급여를 신청하시면 요양사가 와서 씻기고 영양 공급도 해줘요. 저녁에는 어머니가 해주면 되고요. 요양 시간을 더 길게 신청해도 지금 드는 비용보다는 훨씬 더 적게 들 거예요.“
”그래도 집으로 데리고 오면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유경이가 지금 병원에 누워서 저런 샹태로 오래 있는 것이 행복할까요?
그렇다고 계속 병원에 있는다고 해도천수를 다 누리지는 못해요. 정확한 시기는 아무도 모르지만, 머지않은 시일에 유경이는 결국 죽게 됩니다.”
“.....”
“인명은 제천이라는 말이 하나 틀린게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상황에서 병원은 그 ‘제천’이 안되게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깊은 생각에 잠겨 진료실을 나갔다. 유경씨가 이후 집으로 갔는지 병원에 남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집으로 갔다면 최소한 더이상 밤낮으로 큰소리로 울어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법
김현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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